스테이블코인 시장이 2025년 10월 기준 3000억 달러를 돌파했어요. 2024년 한 해 동안 약 27.7조 달러 규모의 거래가 발생했는데, 이는 비자와 마스터카드 결제액을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예요. 미국 재무부는 2028년까지 이 시장이 2조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어요. 이런 폭발적 성장의 배경에는 1971년 금본위제 붕괴 이후 잃어버린 통화 신뢰를 기술로 되살리려는 시도가 있어요.
금본위제가 주던 신뢰, 닉슨 쇼크로 사라지다
금본위제는 1819년 영국이 세계 최초로 도입했어요. 화폐 가치를 금에 직접 연동시켜서 금고에 쌓인 금이 종이돈의 가치를 뒷받침하는 구조였어요. 미국은 1900년부터 금본위제를 시행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4년에는 브레턴우즈 체제가 성립되면서 금 1온스를 35달러로 고정했어요.
하지만 1971년 8월 15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더 이상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금본위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요. 15년간 이어진 베트남 전쟁 비용을 대느라 미국이 금 보유량을 넘어서는 막대한 달러를 찍어냈고,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달러를 금으로 교환해 달라고 압박하자 결국 금태환을 중단한 거예요.
닉슨 쇼크 이후 물가상승률은 두 자릿수를 넘었고, 1973년 석유파동과 맞물려 스태그플레이션이 전 세계를 강타했어요. 한국도 1971년 3분기 11.3%였던 경제성장률이 4분기에는 6%, 1972년 1분기에는 5.3%까지 떨어지는 등 큰 타격을 받았어요. 금이라는 물리적 담보 없이 종이돈만 남은 화폐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거예요.
스테이블코인이 담보로 신뢰를 구현하는 방식
스테이블코인은 금본위제처럼 담보를 통해 신뢰를 구축해요. 하지만 물리적 금 대신 디지털 안전자산을 사용한다는 점이 달라요. 2025년 7월 18일 미국에서 제정된 GENIUS Act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100% 유동성 준비금을 보유하도록 명시했어요. 준비자산은 현금, 연방준비은행 예치금, 만기 93일 이하의 미국 국채로 제한돼요.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 1위인 테더는 약 1400억 달러 규모를 발행하고 있는데, 2025년 3월 기준으로 준비자산 1490억 달러 중 81%를 미국 단기채에 투자하고 있어요. 이 규모는 미국 국채 보유량 순위로 따지면 19위로, 독일이나 멕시코보다 많은 수준이예요. 현재 성장 속도라면 2025년 내에 한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도 추월할 것으로 전망돼요.
금본위제에서는 중앙은행이 금과 화폐의 교환을 보증했다면, 스테이블코인에서는 스마트컨트랙트가 그 역할을 대신해요. 블록체인 위에서 자동으로 실행되는 코드가 담보 자산과 코인의 가치를 1:1로 연동시키고, 모든 거래 내역을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개해요. 위변조가 불가능한 분산원장 기술 덕분에 사용자들은 언제든지 담보 현황을 직접 검증할 수 있어요.
자동조정 메커니즘의 차이점
금본위제의 자동조정 기능은 금의 유출입으로 작동했어요. 무역수지 적자가 발생하면 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이로 인해 통화량이 줄어들면서 물가가 하락해 수출 경쟁력이 회복되는 구조였어요. 반대로 무역 흑자가 발생하면 금이 유입되어 통화량이 늘고 물가가 상승했어요. 중앙은행의 능동적 개입 없이 금의 희소성과 가격 고정 메커니즘만으로 통화 안정성을 유지했던 거예요.
스테이블코인은 두 가지 방식으로 자동조정을 수행해요. 담보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나 안전자산을 1:1로 담보하여 발행되고, 담보 가치 변동 시 스마트컨트랙트가 자동으로 담보 청산 등을 실행해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실물 담보 없이 알고리즘이 코인 발행량을 자동으로 늘리거나 줄여서 시장 가격을 조절해요. 가격이 목표가보다 높으면 코인을 발행하고, 낮으면 소각하는 방식으로 수급 균형을 맞춰요.
금본위제는 물리적 금과 시장 참여자의 행동으로 자동 조정이 이뤄진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스마트컨트랙트와 블록체인 위에서 프로그래밍된 규칙에 따라 자동화된 조정이 일어나요. 둘 다 중앙 기관의 재량적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통화 안정성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금본위제 붕괴가 주는 교훈
금본위제가 붕괴한 이유는 크게 네 가지예요. 첫째, 금 공급량과 경제 성장의 불일치 문제예요. 경제가 성장하고 통화 수요가 늘어도 금 공급 부족으로 충분한 통화 공급이 불가능했고, 이는 디플레이션 압력과 경기 침체를 심화시켰어요.
둘째, 통화정책의 경직성 문제예요. 중앙은행이 경기 변동에 대응해 통화량을 조절하거나 금리 정책을 적극 활용할 수 없었어요. 셋째, 국제협력 부재와 금융 위기 확산 문제예요. 대공황 시기 각국의 일방적 정책 대응이 글로벌 불안정을 가중시켰어요. 넷째, 신뢰의 붕괴와 패닉 확산 문제예요. 금본위제 유지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금융 시장 불안이 확산됐어요.
이런 교훈들은 스테이블코인 설계에 반영되고 있어요. GENIUS Act는 발행사에게 월별 공시 의무를 부과하고, 100% 유동성 준비금을 의무화했어요. 또한 연방 또는 주 금융감독당국의 감독을 받도록 규정해 투명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려고 해요. 글로벌 협력 측면에서는 EU가 2024년부터 MiCA 규정을 시행하고, 금융안정위원회가 2023년 글로벌 권고안을 확정하는 등 국제 공조가 진행되고 있어요.
디지털 통화 신뢰의 새로운 패러다임
스테이블코인은 금본위제로의 완전한 회귀가 아니에요. 대신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통화 신뢰 메커니즘을 제시하고 있어요. 금본위제가 물리적 금의 희소성에 의존했다면, 스테이블코인은 코드와 설계로 신뢰를 구현해요.
2025년 들어 한국에서도 남산타워, 홈플러스 합정점, 센텀시티 등에 스테이블코인을 원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디지털 ATM이 시범 운영되고 있어요. 핀테크 코나아이는 2025년 7월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연을 통해 QR 결제와 기존 카드 인프라를 동시 지원하는 구조를 공개했어요.
월간 활성 사용자 2500만 명, 1억 개 이상의 디지털 지갑이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고 있는 현재 상황은 단순한 실험이 아니에요. 미국 연준 이사 크리스토퍼 월러는 스테이블코인이 달러의 글로벌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고 강력한 기축통화로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어요.
금본위제와 스테이블코인은 통화 신뢰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지만, 그 구현 방식은 완전히 달라요. 물리적 담보에서 디지털 담보로, 수동적 조정에서 자동화된 조정으로, 불투명한 금고에서 투명한 블록체인으로 진화한 거예요. 이는 금융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될 혁명적 실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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