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10년물 국채 금리가 3.5%를 넘으며 독일과의 금리 스프레드가 80bp 이상 벌어진 건 2012년 유로존 위기 이후 처음이에요. 더 놀라운 건 이 수치가 그리스, 포르투갈보다 높다는 사실이에요. GDP 대비 부채 비율이 115%로 그리스(152%)나 이탈리아(138%)보다 낮은데도 시장은 프랑스를 더 위험하게 평가하고 있어요.
피치가 2025년 3월 프랑스 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강등했어요. 프랑스 역사상 가장 낮은 등급이에요. 무디스도 2024년 10월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했고요.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방향성이에요. 2024년 재정 적자는 GDP의 6.1%였는데 2025년 목표는 5.4%, 2029년까지 EU 기준인 3%로 낮춰야 해요. 매년 평균 0.8%포인트씩 줄여야 하는 셈인데 정치적 현실은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구조적 마비, 숫자로 읽는 프랑스의 딜레마
프랑스 정부 지출은 GDP의 57%로 OECD 최고 수준이에요. 이 중 30%가 사회보장과 복지에 쓰여요. 연금 소득대체율은 72~74%로 세계 최상위권인데 부과식 구조라 현재 일하는 세대가 낸 돈으로 은퇴자 연금을 지급해요.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연금 적자는 2025년 18억 유로에서 2030년 135억 유로, 2050년엔 439억 유로로 폭증할 전망이에요.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집권 이후 부유세 폐지와 법인세 인하로 감세 정책을 펼쳤어요. 스타트업과 기업 유치 효과는 미미했지만 세수 기반은 약화됐어요. 여기에 코로나19로 278조 원, 에너지 위기로 118조 원을 쏟아부으면서 재정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어요. 프랑수아 바이루 총리가 2025년 7월 440억 유로(72조 원) 긴축안을 내놨지만 9월 신임투표에서 194 대 364로 참패하며 정부가 붕괴했어요.
은행권이 침묵하는 이유는 따로 있어요
프랑스 주요 은행들은 자국 국채를 대량 보유하고 있어요. BNP파리바와 소시에테제네랄 주가는 정치 불안이 커질 때마다 6% 이상 급락했어요. 국채 금리 상승은 평가손실로 직결되고 은행 자산 건전성을 위협해요. 조달 비용 증가와 순이자마진 축소로 금융중개 기능이 위축되면 실물경제로 충격이 전이돼요.
흥미로운 건 이 위기가 표면화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2011년 그리스 위기 때는 시위와 폭동이 연일 뉴스를 장식했지만 지금 프랑스는 비교적 조용해요. 긴축 반대 시위는 있지만 금융시장 붕괴 수준은 아니에요. 이유는 간단해요. ECB가 TPI(파급경로보호장치)라는 카드를 쥐고 있기 때문이에요.
ECB가 움직이지 않는 계산법
TPI는 2022년 도입된 도구로 ECB가 재량으로 국채를 무제한 매입해 금리 급등을 막을 수 있어요. 단 4가지 조건이 있어요. EU 재정준칙 준수, 심각한 거시 불균형 부재, 재정 지속가능성, 건전한 거시경제 정책 이행이에요. 프랑스는 이 중 첫 번째부터 충족하지 못해요. 재정 적자가 6.1%인데 EU 기준은 3%거든요.
그런데 ING의 벤자민 슈뢰더는 "TPI는 서류상 조건이 엄격하지만 ECB는 재량권이 있다"고 했어요. "프랑스는 너무 크고 중요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고요.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프랑스 스프레드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언급했어요. 시장이 침착한 이유예요. ECB가 최후의 보루로 작동할 거라는 믿음이 깔려 있어요.
문제는 이 믿음이 역설적으로 위기를 키운다는 점이에요. 프랑스 정부는 시장 압력이 약하니까 구조 개혁을 미루고 있어요. 투자자들은 ECB가 개입할 거라는 확신 때문에 프랑스 국채를 계속 매입해요. 금리 스프레드가 80bp까지 벌어졌지만 자금 유출은 제한적이에요. 뉴욕멜론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11월 2년 만에 가장 큰 주간 자금유출이 발생했지만 시스템 위기 수준은 아니었어요.
독일과 이탈리아로 번지는 전염 경로
프랑스 위기가 위험한 건 유로존 2위 경제 규모 국가라는 점이에요. 독일-프랑스 스프레드는 과거 안정기에 35~40bp였는데 지금은 그 두 배예요. 시티그룹은 정치 불안이 심화되면 스프레드가 100bp까지 벌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어요.
국채 금리 동조화가 첫 번째 전염 경로예요. 프랑스 금리가 오르면 독일과 이탈리아 금리도 따라 올라요. 유로존 국채시장이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두 번째는 은행권 노출이에요. 유로존 은행들은 서로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어서 한 나라 위기가 연쇄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세 번째는 투자 심리예요. 프랑스 불안이 커지면 유로화 전체에 대한 불신이 확산돼요.
독일은 2025년 3월 '부채 브레이크' 예외를 인정하며 재정 확대로 돌아섰어요. 국방과 인프라 투자 명목이지만 실질은 경기 부양이에요. 독일 10년물 국채 금리는 하루 만에 30bp 급등하며 1990년대 후반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어요. 골드만삭스는 독일 금리가 중기적으로 3.0~3.75%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어요. 이탈리아는 이미 재정 건전성이 취약한데 프랑스 여파로 차입 비용이 증가하면 구조개혁이 더 어려워져요.
시스템 리스크, 누가 책임질 것인가
프랑스가 '너무 커서 실패할 수 없는' 변수인 이유는 경제 규모만이 아니에요. 유로존 통합의 상징이기 때문이에요. 독일과 함께 유럽 통합을 주도해 온 프랑스가 무너지면 유로존 프로젝트 자체가 흔들려요. 그래서 ECB도, EU 집행위도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시간은 프랑스 편이 아니에요. 매초 5,000유로씩 빚이 늘어나고 있다는 바이루 전 총리 말이 과장이 아니에요. 2025년 이자 비용만 665억 유로인데 2029년엔 1,000억 유로를 넘을 전망이에요. 연금 개혁 없이 이 적자를 메우는 건 불가능해요. 그런데 정치는 정반대 방향이에요.
ECB의 TPI 개입도 시간을 버는 수단일 뿐 근본 해결책은 아니에요. 오히려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어요. 프랑스 정부가 개혁 압력을 느끼지 못하면 문제는 더 커져요. 2011년 그리스는 GDP의 2%였지만 프랑스는 15%예요. 프랑스가 무너지면 ECB도 감당할 수 없어요.
침묵의 대가는 누가 치를까
역사는 반복되는 경향이 있어요. 2008년 미국은 리먼브라더스를 살리지 않았지만 AIG는 구제했어요. 규모의 차이였어요. 유로존도 그리스는 강하게 압박했지만 프랑스에겐 같은 방식을 쓸 수 없어요.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리스크가 너무 커요.
문제는 이 침묵이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 점이에요. 투자자들은 프랑스 위기를 일시적 정치 불안으로 해석해요. 구조적 재정 문제라는 인식이 약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어요. 2011년 이탈리아 금리가 7%를 돌파했을 때처럼요.
ECB는 금리 정책과 TPI 사이에서 줄타기 중이에요. 2025년 6월 기준금리를 2.15%로 인하했지만 라가르드 총재는 "통화정책 사이클의 마무리 단계"라며 추가 인하를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어요. 프랑스 같은 재정 위기 국가에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동시에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하는 딜레마예요.
유로존의 취약점은 통화는 통합했지만 재정은 각국 책임이라는 구조적 모순이에요. 프랑스 위기는 이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례예요. 시장은 지금 침묵하고 있지만 그 침묵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