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이나 새로운 투자 자산 정도로 여겨졌어요. 기관들이 투자하고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되는 등 제도권 금융에 편입되는 모습이 중요하게 다뤄졌죠. 하지만 최근 들어 비트코인의 가장 근본적인 서사, 즉 개인 주권과 프라이버시 자산으로서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고 있어요.
이러한 변화는 우연이 아니에요. 개인이 자신의 자산을 온전히 통제하려는 욕구와, 이를 감시하고 규제하려는 중앙화된 권력 사이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에요. 감시사회에 대한 저항, 중앙 통제에 맞선 자산 보호, 그리고 자가 보관(셀프 커스터디) 강화라는 세 가지 흐름이 맞물리며 비트코인의 본질적인 가치를 다시 일깨우고 있어요.
금융 감시가 일상이 된 사회
현대 사회는 점점 더 투명한 감시사회로 나아가고 있어요. 특히 금융 분야에서 이런 흐름이 두드러져요. 각국 정부와 금융 당국은 자금세탁방지(AML)와 테러자금조달금지(CFT)를 명분으로 강력한 규제를 도입하고 있어요.
모든 금융 거래에는 신원확인(KYC) 절차가 필수가 되었고, 거래소 간 자금 이동을 추적하는 트래블룰(Travel Rule)이 시행되며 개인의 금융 프라이버시는 크게 위축되었어요. 누가, 언제, 얼마를, 누구에게 보냈는지 사실상 모든 내역이 중앙화된 기관에 기록되고 감시받는 환경이 되었어요.
여기에 세금 규제도 한몫해요. 예를 들어, 미국 국세청(IRS)은 2025년 거래 내역부터 Form 1099-DA라는 새로운 양식을 도입해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사용자의 모든 거래 내역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했어요. 이는 주식 시장과 유사한 수준의 강력한 세무 감시가 시작됨을 의미해요.
이처럼 강화되는 금융 감시는 개인에게 자신의 자산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줘요. 정부나 특정 기관이 원한다면 언제든 거래를 막거나 자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는 거죠.
디지털 금에서 저항 자산으로의 회귀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으로 불릴 때는 주로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이나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의 측면이 부각되었어요. 이는 기존 금융 시스템 안에서 인정받는 하나의 투자 자산군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이었어요.
하지만 감시와 통제가 강화되자, 비트코인의 또 다른 본질인 저항 자산으로서의 성격이 다시 떠오르고 있어요. 비트코인은 특정 국가나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전통 금융 시스템과 근본적으로 달라요. 정부가 임의로 발행량을 늘려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는 보이지 않는 세금(인플레이션)에 대한 철학적 저항을 담고 있죠.
중앙 권력이 통제하는 은행 계좌와 달리, 비트코인은 개인이 직접 개인 키를 소유함으로써 누구도 검열하거나 몰수할 수 없는 자산 통제권을 가질 수 있어요. 이러한 탈중앙성, 검열 저항성은 국가의 재정 정책이나 금융 기득권에 도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재평가받고 있어요.
최근 마이크로스트래티지 같은 기업들이 비트코인을 전략적 준비 자산으로 대량 매입하는 현상도 단순 투자를 넘어, 중앙화된 통화 시스템에 대한 경제적 저항의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어요.
정부 규제가 오히려 주권 서사를 자극해요
아이러니하게도, 비트코인의 주권 서사를 가장 강력하게 자극하는 것은 바로 정부의 규제 자체에요. 정부가 비트코인을 통제하려 할수록, 사람들은 통제받지 않는 비트코인의 본질에 더욱 집중하게 돼요.
예를 들어, 미국 재무부 산하 금융범죄단속반(FinCEN)은 코인조인(CoinJoin)이나 믹서처럼 거래 익명성을 높이는 기술을 자금세탁 서비스로 규정하고 강력히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요. 이는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용자들에게 정부가 자신의 거래 내역을 어디까지 들여다보려 하는지에 대한 경각심을 줘요.
또한 특정 국가가 자국민의 해외 송금을 제한하거나 자산 동결 조치를 취할 때, 비트코인은 국경 없이 자유롭게 자산을 이동하고 보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으로 부각돼요.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법정통화로 채택했을 때 국제 금융기구들이 강하게 반발했던 것도, 비트코인이 기존 국가 중심의 화폐 주권에 도전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에요.
이처럼 규제의 압박이 강해질수록, 개인은 중앙화된 시스템의 위험을 깨닫고 자신의 자산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동기를 부여받게 돼요.
자가 보관(셀프 커스터디)이 핵심으로 떠올랐어요
강화되는 감시와 통제에 대한 실질적인 행동 변화는 바로 자가 보관의 확대로 나타나고 있어요. 자가 보관, 즉 셀프 커스터디는 거래소 같은 중개 기관에 자산을 맡기지 않고 개인이 직접 개인 키를 관리하며 비트코인을 보관하는 방식이에요.
"당신의 키가 아니면, 당신의 코인이 아니다(Not your keys, not your coins)"라는 말처럼, 중앙화된 거래소에 비트코인을 보관하는 것은 사실상 내 자산의 통제권을 거래소에 넘겨주는 것과 같아요. 거래소가 해킹당하거나, 정부의 명령으로 출금을 정지하거나, 심지어 파산할 경우 내 자산을 잃을 위험에 그대로 노출돼요.
반면 개인 지갑을 이용한 자가 보관은 사용자가 자신의 자산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에요. 이는 중앙화된 감시와 통제에 대한 적극적인 거부이자, 진정한 금융 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선택으로 자리 잡고 있어요.
최근 하드웨어 지갑 판매량이 늘어나고, 다중 서명(multisig) 지갑처럼 보안성을 높인 자가 보관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요.
하지만 자가 보관은 양날의 검이에요
물론 자가 보관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에요. 강력한 주권을 얻는 대신, 모든 책임을 개인이 져야 하는 무거운 부담이 따라와요.
가장 큰 실무적 리스크는 개인 키 분실이에요. 개인 키나 복구 구문(시드)을 잃어버리면 해당 지갑의 비트코인은 그 누구도, 심지어 본인조차 영원히 접근할 수 없게 돼요. 해킹, 피싱, 악성코드 감염, 혹은 물리적인 기기 파손이나 도난 위험에도 개인이 스스로 대비해야 해요.
법적 리스크도 존재해요. 일부 국가에서는 자가 보관 지갑에서 거래소로 자금을 옮길 때 더욱 엄격한 KYC 절차를 요구하거나, 아예 특정 프라이버시 강화 지갑과의 거래를 차단하기도 해요. 감시 당국은 자가 보관 지갑이 불법 자금 세탁이나 탈세에 이용될 수 있다고 의심하기 때문에, 자가 보관 행위 자체가 잠재적인 법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어요.
비트코인의 주권은 익명성과는 달라요
여기서 중요한 통찰은 비트코인이 추구하는 주권과 프라이버시가 익명성을 보장하는 프라이버시 코인과는 다르다는 점이에요.
모네로(XMR)나 지캐시(ZEC) 같은 프라이버시 코인은 영지식 증명이나 링 서명 같은 기술을 사용해 거래 내역, 송금액, 참여자 주소 자체를 숨기는 익명성을 목표로 해요.
반면 비트코인의 블록체인은 모든 거래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돼요. 누구나 모든 거래를 조회할 수 있죠. 다만 지갑 주소가 특정 개인의 신원과 직접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가명성을 가질 뿐이에요.
비트코인의 주권 서사는 거래를 숨기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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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지만 (투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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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그 장부를 위조할 수 없고 (불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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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한 거래라면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검열 저항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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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키를 소유함으로써 자산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 (자가 보관)
는 점에서 와요. 즉, 비트코인의 프라이버시는 숨기는 것이 아니라 통제받지 않는 것에 가까워요.
결국 비트코인의 주권 서사가 다시 부상하는 현상은, 디지털 시대에 개인이 자신의 경제적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강화되는 감시와 통제 속에서, 비트코인은 단순한 투자 자산을 넘어 개인 주권을 위한 강력한 기술적, 철학적 대안으로 다시금 그 의미를 되찾고 있어요.